미국의 디스커버리 도입 배경 및 발전 과정에 대한 지난 포스팅에 이어 오늘은 한국에서의 디스커버리 제도의 도입 논의 과정과 도입에 있어 유의할 점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 외제차 화재 및 배출가스 조작 사건 등은 당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기업이 생산한 제품으로 인해 많은 소비자들의 안전이 위협받았음에도 이에 대한 손해배상액 및 기업에 부과된 과징금이 터무니 없이 적었고, 문제의 원인 등을 신속하게 파악해 적절하게 제품의 수거나 폐기 등 소비자 피해 예방을 위한 조치가 취해져야 했지만 이 또한 미비해 소비자 피해의 구제 및 예방에 대한 문제점이 드러났습니다. 문제가 커지고 정부가 개입하고 나서야 제대로 된 조사가 시작되었고, 아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업과 소비자 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소비자가 기업을 상대로 문제의 책임을 묻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데는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법에서는 소비자가 기업의 제조물 책임을 확인하기 위해 기업 내부 자료를 확보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큰 사건이 발생하면서 증거 편재 현상의 부조리함이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를 해결하고자 국내서도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이 논의되기 시작했습니다.
- 2015년 3월 대법원은 '사실심 충실화 사법제도개선위원회'를 구성하고 민사소송법상 모든 증거에 대해 소제기 전 증거조사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패스트 트랙' 절차 운영을 제안했습니다. 이후 2016년 국회에서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라 할 수 있는 소제기 전 증거조사 제도에 대한 민사소송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안타깝게 입법까지는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 2017년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정거래법 집행 체계 개선 TF’를 꾸려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그 동안 증거 부족 등으로 손해액 산정이 어려워 실질적으로 피해자 구제가 힘들었던 점을 개선하고자 피해자의 증거확보 능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한 것이죠. 올해 6월에는 ‘한국형 증거개시제도 도입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습니다. 토론회에서는 증거제출명령 관련 제제, 증거유지명령, 변호사 강제주의 등 디스커버리 제도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한 여러 방안들이 논의됐습니다.
자료제출명령제도 개정으로 확대된 특허법
특허 보호 측면에서도 국내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그 동안 특허권은 침해 행위를 적발하기 어렵고 구체적인 침해 입증 역시 쉽지 않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해 특허권 무용론까지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자료제출명령제도(특허법 132조)’라는 이름으로 디스커버리 제도를 일부 도입했습니다. 자료제출명령제도에 따르면, 법원은 특허권 침해소송에서 원고인 특허권자의 신청이 있을 경우 피고에게 해당 침해의 증명 또는 침해로 인한 손해액 산정에 필요한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정당한 이유 없이 피고가 자료제출명령을 거부할 경우, 법원은 원고인 특허권자에게 유리한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2016년에는 명령 불이행에 대한 제재 및 명령 불응 사유를 축소하는 조항을 신설하여 제도의 실효성을 높였습니다. 또한 본래 ‘서류’로 명시 되어있던 자료제출명령의 대상범위가 ‘자료’로 확대되면서 데이터, 전자문서 등도 명령의 대상범위에 포함되었습니다.
부정경쟁방지법(이하 부경법) 및 영업비밀보호 법률을 기준으로 영업비밀에 해당하더라도 해당 내용이 침해의 증명 또는 손해액 산정에 반드시 필요할 경우, 정당한 제출 거부 사유로 인정할 수 없다는 조항 역시 신설됐습니다. 이와 함께 영업 비밀 인정 요건을 완화하기도 했는데요. 개정 전에는 합리적인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된’ 것만을 영업 비밀로 인정했으나, 개정을 통해 비밀로 ‘관리된’ 이라는 표현으로 바꾸면서 권리 입증에 대한 부담을 줄였습니다. 올해 6월에는 구체적 행위태양(행위의 여러 형태 및 모양)의 제시를 의무화하는 특허법 126조가 시행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특허권 침해소송에서 특허침해행위의 구체적 행위태양을 부인하는 피고는 자기의 구체적 행위태양을 제시해야만 합니다. 이를 제시하지 않을 경우, 특허권자에게 유리한 판단을 내리게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시행 및 개정되고 있는 다양한 제도들 역시 아직 미비한 부분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증거의 유지 및 보전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의 처벌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불과해 너무 가벼운 수준의 제재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미국의 디스커버리 제도에서 증거를 누락 및 삭제할 경우 막대한 벌금이나 최대 패소판결까지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실효성 있는 제도라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은 어떻게?
디스커버리 제도는 장점이 확실한 제도이지만 도입에 대한 우려도 존재합니다. 제도 도입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는 발생 가능한 문제점을 파악해 대비하고, 관련법에 대한 절차 및 규정을 보다 상세하게 확립해 실질적이고 효율적으로 법에 적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미국에서도 디스커버리 제도로 인해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 투입이 과도하다는 우려들이 있습니다. 디스커버리에 투입되는 비용은 각자가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개인이나 중소기업 등 상대적 약자는 소송 진행에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반대로 이 때문에 제도를 남용해 기업을 상대로 반복적인 소송을 제기해 막대한 손실을 끼쳐 경영활동에 방해를 주거나, 협박에 활용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미국 연방민사소송규칙(FRCP)도 이러한 오남용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차례 법을 개정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앞서 소개한 올해 6월 정책토론회에서 ‘증거개시 제한 사유 존재 여부’, ‘개별 증거조사에 있어서 제한 사유 존재 여부’ 등으로 오남용 가능성을 최소화 하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개별 증거 사유에 해당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비밀 심사 절차를 채택하는 것은 정보 공개에 따른 영업기밀 유출 등의 위험을 최소화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디스커버리 제도의 성공적인 국내 도입을 위해서는 데이터 관리 프로세스의 정립이 필요합니다. 현재 소송 관련 자료 뿐 아니라, 대부분의 문서가 전자화 되어 있습니다. 전자문서는 그 양이 매우 방대하고, 위변조 위험이 크며, 자료의 복원이나 접근성의 문제, 데이터 처리의 전문성으로 인한 절차 지연, 불필요한 자료의 노출 위험성 등의 특징이 있기 때문에 보다 전문적이고 기술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전자 증거의 특성을 반영한 데이터 처리 절차를 마련해 증거 수집부터 분석, 처리단계까지 자료의 무결성과 가용성을 확보한다면 보다 실효성 있는 제도의 운영이 가능합니다.
현재 국내에는 민사소송의 정보화를 촉진하고 신속성,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민소전자문서법 상 전자문서 이용에 대한 기본원칙과 절차는 마련되어 있습니다. 민소전자문서법은 전자적 형태로 작성, 송신∙수신, 저장된 모든 정보를 ‘전자문서’로 규정합니다. 여기에는 각종 전자 파일은 물론 이메일, 음성, 동영상, 휴대폰 문자 메시지도 포함됩니다. 해당 법률에는 특별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자적 형태의 문서 또한 증거로서의 효력을 인정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만, 해당 자료의 수집, 처리, 제출 등에 관한 세부사항은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현실적인 제도 도입 및 운영을 위해서는 상세 가이드라인 마련 등 보완이 필요합니다. 명확한 데이터 관리 및 처리 기준이 마련되면 소송에 대비하는 기업 입장에서도 관련 자료들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소송에 투입되는 시간 및 비용을 줄일 수도 있습니다.
특허법 및 부경법 개정에 이어 국내 보톡스 분쟁을 계기로 논의되고 있는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는 작년 6월 중소벤처기업부의 ‘중소기업기술 보호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더욱 활발히 논의되고 있습니다. 지난 9월 16일에는 중기부가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를 내년에 도입하는 것은 결정되었고, 시행 규칙 개정 및 법제화가 필요한 부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만큼 민사 전반에 걸쳐 국내 실정에 맞는 방식으로 도입돼 소송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길 기대해 봅니다.
미국의 디스커버리 도입 배경 및 발전 과정에 대한 지난 포스팅에 이어 오늘은 한국에서의 디스커버리 제도의 도입 논의 과정과 도입에 있어 유의할 점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 외제차 화재 및 배출가스 조작 사건 등은 당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기업이 생산한 제품으로 인해 많은 소비자들의 안전이 위협받았음에도 이에 대한 손해배상액 및 기업에 부과된 과징금이 터무니 없이 적었고, 문제의 원인 등을 신속하게 파악해 적절하게 제품의 수거나 폐기 등 소비자 피해 예방을 위한 조치가 취해져야 했지만 이 또한 미비해 소비자 피해의 구제 및 예방에 대한 문제점이 드러났습니다. 문제가 커지고 정부가 개입하고 나서야 제대로 된 조사가 시작되었고, 아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업과 소비자 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소비자가 기업을 상대로 문제의 책임을 묻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데는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법에서는 소비자가 기업의 제조물 책임을 확인하기 위해 기업 내부 자료를 확보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큰 사건이 발생하면서 증거 편재 현상의 부조리함이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를 해결하고자 국내서도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이 논의되기 시작했습니다.
자료제출명령제도 개정으로 확대된 특허법
특허 보호 측면에서도 국내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그 동안 특허권은 침해 행위를 적발하기 어렵고 구체적인 침해 입증 역시 쉽지 않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해 특허권 무용론까지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자료제출명령제도(특허법 132조)’라는 이름으로 디스커버리 제도를 일부 도입했습니다. 자료제출명령제도에 따르면, 법원은 특허권 침해소송에서 원고인 특허권자의 신청이 있을 경우 피고에게 해당 침해의 증명 또는 침해로 인한 손해액 산정에 필요한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정당한 이유 없이 피고가 자료제출명령을 거부할 경우, 법원은 원고인 특허권자에게 유리한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2016년에는 명령 불이행에 대한 제재 및 명령 불응 사유를 축소하는 조항을 신설하여 제도의 실효성을 높였습니다. 또한 본래 ‘서류’로 명시 되어있던 자료제출명령의 대상범위가 ‘자료’로 확대되면서 데이터, 전자문서 등도 명령의 대상범위에 포함되었습니다.
부정경쟁방지법(이하 부경법) 및 영업비밀보호 법률을 기준으로 영업비밀에 해당하더라도 해당 내용이 침해의 증명 또는 손해액 산정에 반드시 필요할 경우, 정당한 제출 거부 사유로 인정할 수 없다는 조항 역시 신설됐습니다. 이와 함께 영업 비밀 인정 요건을 완화하기도 했는데요. 개정 전에는 합리적인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된’ 것만을 영업 비밀로 인정했으나, 개정을 통해 비밀로 ‘관리된’ 이라는 표현으로 바꾸면서 권리 입증에 대한 부담을 줄였습니다. 올해 6월에는 구체적 행위태양(행위의 여러 형태 및 모양)의 제시를 의무화하는 특허법 126조가 시행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특허권 침해소송에서 특허침해행위의 구체적 행위태양을 부인하는 피고는 자기의 구체적 행위태양을 제시해야만 합니다. 이를 제시하지 않을 경우, 특허권자에게 유리한 판단을 내리게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시행 및 개정되고 있는 다양한 제도들 역시 아직 미비한 부분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증거의 유지 및 보전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의 처벌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불과해 너무 가벼운 수준의 제재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미국의 디스커버리 제도에서 증거를 누락 및 삭제할 경우 막대한 벌금이나 최대 패소판결까지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실효성 있는 제도라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은 어떻게?
디스커버리 제도는 장점이 확실한 제도이지만 도입에 대한 우려도 존재합니다. 제도 도입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는 발생 가능한 문제점을 파악해 대비하고, 관련법에 대한 절차 및 규정을 보다 상세하게 확립해 실질적이고 효율적으로 법에 적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미국에서도 디스커버리 제도로 인해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 투입이 과도하다는 우려들이 있습니다. 디스커버리에 투입되는 비용은 각자가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개인이나 중소기업 등 상대적 약자는 소송 진행에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반대로 이 때문에 제도를 남용해 기업을 상대로 반복적인 소송을 제기해 막대한 손실을 끼쳐 경영활동에 방해를 주거나, 협박에 활용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미국 연방민사소송규칙(FRCP)도 이러한 오남용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차례 법을 개정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앞서 소개한 올해 6월 정책토론회에서 ‘증거개시 제한 사유 존재 여부’, ‘개별 증거조사에 있어서 제한 사유 존재 여부’ 등으로 오남용 가능성을 최소화 하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개별 증거 사유에 해당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비밀 심사 절차를 채택하는 것은 정보 공개에 따른 영업기밀 유출 등의 위험을 최소화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디스커버리 제도의 성공적인 국내 도입을 위해서는 데이터 관리 프로세스의 정립이 필요합니다. 현재 소송 관련 자료 뿐 아니라, 대부분의 문서가 전자화 되어 있습니다. 전자문서는 그 양이 매우 방대하고, 위변조 위험이 크며, 자료의 복원이나 접근성의 문제, 데이터 처리의 전문성으로 인한 절차 지연, 불필요한 자료의 노출 위험성 등의 특징이 있기 때문에 보다 전문적이고 기술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전자 증거의 특성을 반영한 데이터 처리 절차를 마련해 증거 수집부터 분석, 처리단계까지 자료의 무결성과 가용성을 확보한다면 보다 실효성 있는 제도의 운영이 가능합니다.
현재 국내에는 민사소송의 정보화를 촉진하고 신속성,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민소전자문서법 상 전자문서 이용에 대한 기본원칙과 절차는 마련되어 있습니다. 민소전자문서법은 전자적 형태로 작성, 송신∙수신, 저장된 모든 정보를 ‘전자문서’로 규정합니다. 여기에는 각종 전자 파일은 물론 이메일, 음성, 동영상, 휴대폰 문자 메시지도 포함됩니다. 해당 법률에는 특별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자적 형태의 문서 또한 증거로서의 효력을 인정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만, 해당 자료의 수집, 처리, 제출 등에 관한 세부사항은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현실적인 제도 도입 및 운영을 위해서는 상세 가이드라인 마련 등 보완이 필요합니다. 명확한 데이터 관리 및 처리 기준이 마련되면 소송에 대비하는 기업 입장에서도 관련 자료들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소송에 투입되는 시간 및 비용을 줄일 수도 있습니다.
특허법 및 부경법 개정에 이어 국내 보톡스 분쟁을 계기로 논의되고 있는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는 작년 6월 중소벤처기업부의 ‘중소기업기술 보호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더욱 활발히 논의되고 있습니다. 지난 9월 16일에는 중기부가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를 내년에 도입하는 것은 결정되었고, 시행 규칙 개정 및 법제화가 필요한 부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만큼 민사 전반에 걸쳐 국내 실정에 맞는 방식으로 도입돼 소송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길 기대해 봅니다.